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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주는 사람- 전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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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7-12 11:06 조회1,4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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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이동 - 2013.2.27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곳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한다. 머리가 소중하단 말이 아니다. 죽는 날이 가까워지면 제 자란 고향 산천이 그립다는 말일 것이다. 젊어 왕성한 체력을 자랑 할 때는 그 마음을 잊고 산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쇠약한 자신을 발견하면 생각은 달라진다.
일본에는 현재 콘카츠 열풍이 불고 있다. 그동안 자유롭게 살겠다고 독신을 주장하던 젊은이들이 차츰 나이가 들면서 함께 머리 둘 곳을 찾으려하니 옆구리가 아닌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짝을 찾으려 헤맨다. 취미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아 결혼을 전제로 모이고 있다.  

나 어린 시절 언덕 모양이 넓고 둥글다고 해서 마당 재라는 이름이 붙은 내 고향 한 마을은 재 이름만큼이나 마음이 포근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어린 내가 학교를 가려면 제일 먼저 만나는 마을 이어서 더욱 정이든 마을이다. 그 마을이 정겨운 이유가 또 하나있다. 고향 동네에서 누구보다도 친밀하고 같은 나이의 친구가 사는 마을이기도 하다. 진영(가명)이라는 친밀감이 있는 이름을 가진 그 친구와 어느 날 심하게 다투었다. 서로가 얼굴조차 분별하기 어려운 갓난아이 시절부터 친밀하게 지낸 사이라서 치고 때리고 싸우지는 않았어도 말싸움으로 심하게 다투었다. 둘은 배불리 먹은 것도 없는 빈약한 배를 안고 한참을 소리치고 싸웠으니 서로가 지쳤다. 진영이 형님이 농사 짖는 작은 복숭아 과수원 안에서 둘은 쉬면서 잠을 청했다. 들었다. 진영이 는 코를 골며 참 잘도 잔다. 그러나 나는 잠을 자려하면 할수록 두 눈이 초롱초롱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그곳은 우리 집과 밭도 아니고 또 진영이 와 악을 쓰고 다툰 것이 마음에 혹이 되어 가슴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헌데 저 아이는 그것도 없는 무정한 친구인가 어찌 저렇게 마음 편히 잘도 잘까 그러면 나만 손해를 보고 사랑한 것일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잠도 오지 않는데 낮잠 자는 친구를 지켜만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툭툭 털고 일어섰다. 그냥 가려니 찜찜하고 서운한 감이 들었다. 동물도 제 지나는 곳에는 영역표시를 하는데 나도 영역표시를 하고 싶다. 친구를 사랑한다는 표식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지난 오일장에서 어머니가 사주신 점퍼를 진영이 에게 덮어 주었다. 잠자면서도 무엇인가 따뜻함을 느꼈는지 있는지 내 점퍼를 깊숙이 끌어 앉는다. 역시 덮어 주기를 잘 했구나 싶어 만족한 웃음이 양 볼을 밝혀 준다.
입고 나간 점퍼의 행방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적당히 변명을 하고 하루가 지났다. 오늘은 점퍼를 찾으러 가야 한다. 진영이가 가져다주지 않으니 내가 가져와야 야단을 맞지 않을 것 같았다. 혹시 풀밭에 뒹굴면서 풀물은 들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소 꼴 베는 아버지를 돕다가 흰 적삼에 풀물이 들어 어머니에게 야단맞던 일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른들은 일복과 나들이 복을 구분해 둔단다. 마당 재를 지나서 진영이 집에 이르니 진영이가 엄마와 함께 안방에서 반가워하며 어저께 밭에서 잠자고 있을 때 새 점퍼를 덮어주고 갔다면서 어머니에게 침이 마르도록 내 칭찬을 한다. 진영이 는 그 사건이 그렇게도 고마웠는가 보다. 아버지가 없이 자란 진영이 는 결혼한 형님 밑에서 연로하신 어머니와 살면서 아버지 사랑에 굶주린 친구였기에 더 친구의 사랑이 고마웠는가 보다. 별것도 아닌 것을 상대방이 생각 외로 고마워 할 때처럼 흐뭇한 때는 없다.

나는 그때 그 사건을 종종 인간관계에서 응용하여 사용한다. 상대방이 좀 잘못을 했다 하여도 친구를 덮어준 겉옷 같이 상대방을 덮어주고 감싸주면 더없이 고마워한다. 그렇게 사귄 사람은 짧은 기간에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 그러나 반대로 누군가의 잘못을 발기발기 벗겨서 온 동네방네 광고를 한다면 잠시의 불만은 해소 되는 듯 할 것이나 소중한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씩 다 잃게 된다. 내 마음 시원하자고 주변에 소중한 사람 다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개미와 벌 그리고 사람은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도를 닦으며 혼자 산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창조주가 인간을 처음 창조할 때부터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주셨기 때문이다. 탯줄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 함께 라는 공동체가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함께 자란 인간 함께 놀고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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